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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작도서]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미드웨이 보기 전 꼭 읽어야! 정보
    카테고리 없음 2020. 1. 27. 05:55

    앞으로 5분에서 모든 공격대가 출격을 끝내는 것이었다 운명의 5분!함교에서 출격을 신호하다 목소리가 전성관으로 알려졌다. 비행장이 흰 깃발을 흔들었다. 비행 갑판의 선두에 한상차림 오 선 전투기 1번 기가낫하항상로 살짝 날아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적기 급강하! 파수꾼이 소리쳤다. 나쁘지 않은 담력을 보았다. 시커먼 급강하 폭격기가 세대. 아카기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당했구나.적기의 폭음이 지나가는 울림. 이어 쿵 소리가 났다. 맞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쿵 소리가 났다. 선교에서 전방을 바라보니 그곳에서도 시커먼 연기가 자욱했다. 가가 당했구나. 나쁘지 않다. 왼쪽을 보니 소류도서가 갑자기 곳곳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고 있었다. 아니! 소류도 당했구나. 예쁘지 않아.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이화에서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이 긴박하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은 한국에서도 "대망"으로 잘 알려진 제펜 소설가 야마오카 쇼하치의 "태평양 전쟁"에서의 한 구절이었다. 미 항모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비행기에서 폭탄을 제거해 어뢰로 바꾼 뒤 처음으로 항모의 비행갑판 위를 차례로 달려가는 제펜함재기, 그런 가운데 저 높은 상공에서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매 떼처럼 항모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미군 SBD 돈트레스 급강하폭격기 편대. 폭탄이 갑판에 직격하자 막 날아오를 뻔했다 비행기가 폭발과 함께 잔해가 낫하항상로 나오고 갑판 위에 쌓였던 폭탄과 항공 연료가 유폭을 일으켰고 아카기, 카가, 소류 3척의 항모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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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만 기습 그 당시 1차 공격대를 진두 지휘하고 진주만 기습의 성공을 알리는 "도라 도라 도라"의 암호를 송신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후치다 미쓰오 대좌(그 당시 중령)가 묘사한 이른바"운명의 5분"였다 그는 미드웨이호에서도 항공모함 아카기의 비행대장이었지만, 막상 작전 며칠 전에 급성 맹장염에 걸려 당일 출격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아카기 함교에 남아 부하 출격과 미군의 습격, 그리고 일본 기동부대가 전멸하는 모습을 과인의 눈으로 지켜봤다. 패전 후, 후치에 쓴 미드웨이 회고록은 공전의 히트를 치다 그가 언급한 "운명의 5분"은 지금도 미드웨이 해전의 상징 이과 다름없다. 야마오카의 소설<태평양 전쟁>은 물론이고 이후의 다양한 창작물, 1976년 믹크에서 제작한 고전 영화<미드웨이>을 비롯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일본 폰 영화<연합 함대 사령 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영원한 제로>에서도 당싱로 재현되 슴니다. ​의 미드웨이 해전은 제2차 엘 알 라메인 전투, 스카면 링 라드 전투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그와잉로되는 전투이자,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 역시한 가장 유명한 해전이다. 진주만 기습 이후 7개월 동안 연전연패를 한 미 해군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요기라고 모든 전력을 동원하고 건곤일척의 결전에 내 안내했다. 니미츠가 미드웨이에 투입한 3척의 항모 욕타웅, 엔터프라이즈, 호닛)은 그 당시 태평양에서 운용 가능한 미국 항모 전력의 전체였다. 새러토가는 본토에서 수리 중이었고, 렉싱턴은 산호해 해전에서 침몰했기 때문에 약간은 대서양에서 와스프가 추가됐지만, 만약 미드웨이에서 요ー크타웅 외에 그아잉마ー지 2척도 침몰 칠로 거인 대파했다면 미국 해군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었을 것이다. 니미츠는 결코 무모한 도박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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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웨이에서 양측의 전력은 하나 본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세간의 관념적인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백중의 기세에 가까웠다. 해군 수뇌부의 오판과 방만한 전략, 불필요한 병력 분산 때문입니다. 하고 있언 해군은 미드웨이 공략 작전과 동시에 알류 등 공략 작전을 밀어붙였고 200여척에 이르는 대함대를 동원해도 병력이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실제로 미드웨이 해전 좋은지 미국 해군과 결전에 그와잉송 병력은 한개/하나 0에 불과했다 20척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항모는 4척에 지났어요. 제5항공 전대 소속의 정규 항모 2척(송학, 즈이 카쿠)은 산호해 해전의 손상에 본토에서 수리 중, 학과에 다니는 동안에도 경항공 모함들은 전략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얄류상 공략 작전에 투입됐다. 덕분에 항공 모함 숫자에서는 4:3에 미군이 열세했지만, 미드웨이가 불침 항공 모함의 역할을 한 덕택에 항공기에서는 오히려 미군이 30%나 더 많았다. 미드웨이 작전의 목적 자체가 태평양에서 유한방해물인 진주만의 미 해군 항공모함 부대를 미드웨이로 끌어낸 뒤 결전을 벌여 궤멸시키기 때문입니다.는 점에서 하나본 해군이 미 해군을 얼마나 과민하게 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일과인이 당해도 마치 "현인"이라고 생각하는 야마모토도 다르지 않았다.야마모토는 미드웨이를 공격하면 미 해군이 스스로 기어과인을 해올 것이고 그때 결전하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했을 뿐 정작 미 해군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미드웨이 방위태세가 어떤지, 자신들의 작전계획이 사전에 무산돼 미 항모부대가 이미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입습관처럼 미국을 얕보지 말라면서도 누구보다 미국을 얕본 것은 야마모토 자신입니다. 그렇다고 싸우기 전에 이미 미국 해군의 승리가 결정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항공기 수적으로는 미국 해군이 우세했지만 질적으로는 오랜 실전과 경험으로 단련된 하나본군이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미드웨이와 3척의 항공 모함에서 출격한 미군 폭격기는 새벽부터 집요하게 하는 거던 함대에 파상 공세를 퍼부었지만 그때마다 매우 나는 손실을 입고 격퇴됐다.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멕쿨로스키 소령의 제6 급강하 폭격기 대대가 제 때 할지 본 함대 상공에 그와인 타그와잉지앙앗고 나 하는 건 함재기가 미군 항공 모함을 한발짝 이미 서울 습격합니다.면, 다음의 승패는 어떻게 흘렀을지도 모른다. 만약 하나 본함대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가장 작은 피해를 보고 미군에게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었다.미 해군에게 미드웨이 해전은 그야말로 극적인 승리였지만, 그렇다고 당장 태평양전쟁의 추가는 미 해군에 기운 것은 아니다. 하고 있언 해군이 둘도 없는 항모 4척을 한꺼번에 잃었지만 미국 해군도 한척의 항공 모함과 다수의 함재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인가 봤어 해군에는 여전히 2척의 정규 항모 송학, 즈이 카쿠)와 4척의 경항공 모함이 남아 있었다. 과달카날 해전 직전에는 2척의 개조 항모(히요, 준요)이 전열에 추가되는 등 여전히 막대한 전력 이프니다니다. 하나 942년 8월부터 하나 943년 2월까지 반년 동안 과달카날 해역에서 열린 해전은 미드웨이에 비해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 해군은 여러 차례 뼈져린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미드웨이 주역이었던 엔터프라이즈는 몇 번인가 과인 대파했고, 호넷, 와스프는 격침당했습니다. 미드웨이호의 승리가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이전에는 하나봉 해군이 우세했다면 미드웨이 승리 덕분에 미 해군은 처음으로 하나봉 해군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고, 과달카일의 치열한 소모전 끝에 거짓 없이 결국 하나봉 해군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다시 미 해군이 바다에서 패배하고 과도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이른바 '천조국 해군'의 탄생입니다. 이후의 태평양전쟁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아무리 과도한 이네티는 그의 싸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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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설령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이 패배하더라도, 어쨌든 하나본 제국의 확장은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America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확실히 틀린 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쪽만의 견해이기도 하다. 미드웨이 승리로 미 해군은 비로소 주도권을 잡고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니미츠는 미드웨이에서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건곤한 결전을 벌였다. 여기서 또 패배했다면 미군의 사기는 더욱 저하됐을 것이고, 니미츠는 더 이상 도박성 있는 작전 대신 남은 전력이라도 지키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당연히 과달카날 싸움은 없었을 것이다. 미 해군의 본격적인 반격은 적어도 한살 늦었기 때문에 하나 943년 중반, 어쩌면 하나 944년 초에 시작된 것이었다. 하나 945년 5월 강하지만 이 항복했을 때, 태평양에서는 겨우 사이판 공략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물론 태평양의 흐름과 관계 없이, 맨해튼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됐을 것이고 하나 945년 7월 하나 6개 최초의 원폭 교무욜"토우리니토우"이 역사대로 실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America가 원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하나 본본토에 투하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원폭 리틀 보이를 싣고 히로시마를 향한 B-29에놀라 게이가 출격한 티니안 섬과 마리아나 제도를 장악하려면 적어도 몇달은 더 싸워야 한 것이었다. 그 사이 얄타회 다음으로 대하 참전을 약속한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 하나봉 북부를 침공했을 것이다. 38선은 없었던 것이며, 소련군은 별다른 방해 없이 쉽게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다.한국이 미드웨이 해전의 중요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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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6월 1조각으로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새 도서<미드웨이 해전-태평양 전쟁을 자결한 전투의 정말>이 출판됐다. 하나 0년쯤 전에 플래닛 미디어에서도<미드웨이>라는 책이 자신에게 온 적이 있었으나 분량이 200여 페이지에 불과했고 전투의 경과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 깊이가 부족했습니다. 초보자를 위한 책이다. 물론 요즘은 절판되었지. 반면 1조각으로 자신 온<미드웨이>은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난 배경과 1일본군이 왜 패배 미국 해군이 이겼는지 전후 그이츄이울, 전반적으로 깊게 판 진정한 미드웨이 해전의 분석 책이었다 저자도 디스커버리, 히스토리 채널, BBC등에서 각종 고증과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역사 컨설턴트로 태평양 전쟁의 최고 전문 의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야마모토가 세운 계획의 결점인 은폐와 기만에 대한 집착, 전략 자산의 경솔한 배치, 목표에 대한 두서 없는 접근, 힘든 1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놓치지 않았다면 성공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규 항공 모함 6척을 모두 보유한 완전 편제의 상태의 기동 부대였다. 그렇게 자신 4월에 일어난 참모진들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야마모토는 기본 작전 계획을 변경하고 이 비장의 카드를 스스로 흔들었다. 대본영 해군부의 멱살을 잡아 휘두른 것에 대한 또 다른 대가로 야마모토는 남서 태평양에서 4함대의 작전 계획에 상당한 전력을 지원하고 주는데 동의했습니다."-p)하나 하나 하나 ​"그럼 싱크의 모의 죄가 적극적으로 입을 열고 있지 않다면, 야마모토와 참모들의 죄는 적극적으로 모두의 눈을 숨기려고 했어요라는 것이었다 대항군을 지낸 장교가 실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이 사용한 전술과 유사한 비법을 제시했을 때부터 훈련의 성격이 정확히 드러났다. 미드웨이 상륙 중 대항군이 예상보다 1작 자신 타쟈싱쟈싱크모 부대를 측면에서 습격했습니다. 1일본 항모는 큰 피해를 보면서 상륙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때 심판이 미군은 이런 전술을 쓸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대항군의 전략은 야마모토가 예상하는 적의 출현 시기와 장소에 맞추어 수정되었다."-p. 하나하나 8" 미드웨이를 효율적으로 공격하려면 대함전투에 대비하여 공격기의 절반을 예비로 보유하라는 야마모토의 명령에 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자기구모는 명령 위반에 대해 끊임없이 호된 비판을 받아 왔다. 그렇다면 신 명령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야마모토의 명령이 원래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 자기 거미가 상관의 희망을 지켰다면 섬의 방어를 を破る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꾀하는 자기 강의 부하가 싸우다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 있어도 에구사와 '최정예 부대'를 비행 갑판에서 1그와은욕라도 하고 너로 놔둔다는 것이 야마모토의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야둥 자신의 공격 거리만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한마디로 기막힌 생각."-p.238​"엔터프라이즈와 욕타웅 공격대에 각각 포착된 1일본 기동 부대는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 하필이면 이 때 작은 불운이 겹쳤기 때문에 1일본군은 막대한 해머와 모루 사이에 낀 것이지 신 바뀌지 않는 형태가 됐다. 이전까지는 통합의 이점 이쟈싱 전투기의 엄호 없이 단독 행동하는 비행 대들이 진입한 뒤 다시 둘로 자기 누이고 1일본 항공 모함 한척을 양면 공격했습니다. 이번에는 3개의 폭격 비행대와 하나개 뇌격 비행대가 동시에 공격했습니다. 이번에는 3개의 폭격 비행대와 하나개 뇌격 비행대가 동시에 공격했습니다. 이 공격은 이날 아침 1일본군이 맞는 공격 중 가장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1일본군 함대 방공은 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일어나고 팔꿈치게 된다. 파멸적인 실수였다."-p.324​"1일본 기동 부대는 이날 오전에 직면한 상태 군에서, 즉 공격대를 배치하는 틈만 요구하는 가운데 미군 공격대를 맞이했습니다. 성과가 없어도 지치지 않고 달려든 미군의 공격으로 쟈싱 거미 부대는 07시부터 마비됐다. 후치의 운명의 5분이라는 이 핵심 사실을 숨기려고 창작한 말에 불하다. 5분도 1일본군은 구원 받을 수 없었다. 상처에서 계속 피를 흘리는 부상자처럼 기동부대는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피 같은 때로 끝없이 흘렀다. 최근 환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p.342​"최근 1일본군은 포로의 진술과 아군 정찰 보그 그래서 쟈싱 프지앙 아이 아무리 자신 승산 없는 싸움을 번복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코바야시 공격대가 미 항공 모함 한척에 큰 피해를 준다 하더라도 히 류윤지는 자신의 멀리 2척을 적대하는 힘이 없었다. 아군 항공 모함 한척이 남아 있어 적의 항공 모함 2척만 더 잡으면 된다는 생각은 지면을 받게 안이한 계산이고, 검소하게 축소한 히-비행 대대의 그이츄이울 고려하지 않은 계산임."-p.42개 ​의 미드웨이 해전은 절대 절명의 위기로 수많은 파 1롯도우루이 하쟈싱로 단결하고 훨씬 우세한 적 항공력의 공세를 막아냈다는 점에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과 비슷하다. 그렇게 자신, 영국 본토 항공전이 하나 940년 7월부터 하나 0월까지 4개월 동안 열렸으며 1진 1퇴의 치열한 인내심 싸움인 면, 미드웨이 해전은 하나 942년 6월 41, 단 하루 종일 열린 1임. 미군의 승리가 니미츠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파 1롯도우루의 희생, 무슨 보다도 운이 붙어 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1일본군의 심각한 실책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1일본 해군의 역량은 바로 절정임. 미 해군은 연전 연패로 완전히 위축됐고 국력에서 우세하더라도 전쟁 준비가 거의 안 돼 있어 당장 전력을 보충할 방도도 없었다. 야마모토의 걱정은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에서의 결전을 받아들일까 봐 그 결전에서 패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1일본 해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없더라도 최소한 미드웨이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패했을까.​ 이 책이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미드웨이까지 1일본 해군의 총체적 난맥상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동안 통념은 자신들의 구모 우유부단함에 가장 큰 책임을 떠넘겼다. 야마모토가 일찌감치 미항공모함부대 출몰 대비해서 함재기의 절반을 예비로 남기라는 지시를 무시한 점, 미드웨이 공략 도중에 미 항공 모함 부대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고 1초가 절박한 그이츄이에서 폭탄을 어뢰로 교체하느라 불필요한 테테로울 허비했다는 점, 그래서 실제로 멕쿨로스키 공격대가 쟈싱 탈 때 속수무책이 되고 한발의 폭탄이 갑판에 직격하면 그 위에 뒹굴고 있던 폭탄과 항공 연료들이 연쇄 폭발을 1우키묘은소 3척의 항모를 5분 만에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하면 저자들은 이런 통념이 모두 잘못된 것이며, 결과론적 주장이라고 지적합니다. 가장 큰 책임은 야마모토를 비롯한 1일본 해군 수뇌부에 있는데, 이들의 졸렬하고도 주먹 구구식 전략에 있다는 것이었다 니미 트리는 모든 전력을 총 동원한 반면, 야마모토는 불필요하게 병력을 분산시키고 스스로 전력을 약화시켰다. 만약 처음의 구상대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면 아무리 니미츠가 힘을 써도 미 해군이 승리할 길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의 구모는 아무 책임이 없는가. 현장 총지휘관이었던 그는 분명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지휘관이지만 롬멜 같은 결단력과 문재의 유연성, 독창성을 갖춘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려했던 귀취가 일어나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정해진 교리와 원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미군의 파상 공세는 1일본 해군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순간 틈을 보이자 미군은 놓치지 않고 3척의 항모를 1에게 격침시켰다. 자신의 거미는 마지막 남은 1척의 항공 모함도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 칠로 종업원이 기회를 엿보보다는 이미 당한 대로 갚겠다고 하고 무계획 미국 항모를 찾아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이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실추된 체면을 만회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이다. 덕분에 미 항모 욕타웅을 격침시키기는 했지만 중 류 또 격침됐고 우수한 파 1롯과 승무원의 대부분을 잃었다는 점에서 승리는커녕 무승부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욕타웅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구조되고 희생자가 겨우 80여명에 불과하고, 히 류윤지는 파 1롯데 70명과 400여명의 승무원을 잃었다. 1일본 항공 모함 승무원의 희생은 무려 2천 여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미드웨이에서 1일본 해군이 승리했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졌을까. 저자는 요기에 대해서도 변할 게 없다고 공언할 겁니다. 1일본 해군의 전력에는 하와이는커녕 미드웨이 섬을 공략하기조차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드웨이 섬은 손바닥만한 섬이지만 괌이 자신의 웨이크 섬과 달리 완전히 요새화돼 있었다. 수비대 역시 싱가포르 영국군처럼 사기가 심한 오합지졸식 식민지 군대가 아니라 잘 훈련된 미 해병대였다. 그들은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드웨이를 점령한 1번 어렵지만, 예를 들면 점령한 곳에서 그것을 지키는 1은 더 어려웠다. 이미 한계에 직면한 1일본의 병참선에는 도저히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하와이를 공략하니 더 멀리 미국 본토에 상륙하다니 말도 안 된다.​ 오링이쵸에 태평양 전쟁 자체가 1일본 해군이 견딜 수 있는 전략의 범위가 없었다. 그때까지 1일본 해군은 자국 근해에서 제한적인 국지전으로 한두번의 단기 결전을 벌인 경험이 모두였다.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총력전을 한다는 것은 상상 호도이라면 몰라도 실제로 그런 1을 소화할 능력이 떨어졌다. 전략의 부재, 소통의 부재, 아내의 이야기에서부터 빈약했던 국력, 그런 엉거주춤한 자만심과 상대방에 대한 경시 등. 미드웨이에서 운이 없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전까지 운이 좋았고 그 운이 미드웨이에서 바닥났다고 할 수도 있다. 미드웨이의 그이츄이웅 어차피 미드웨이가 아니라 어디든 1어( 1임. 또 야마모토는 미드웨이의 전공을 교훈 삼아 와신상담하는 대신 자신 프지앙아그와 해군의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며 과달카날에서 미 해군과 소모전을 갖고 1일본 제국의 멸망을 더 앞당기는 데 1조엤습니다.​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인 미드웨이를 놓고 왜 1일본 제국이 패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막대한 분량이지만, 방대한 논문과 자료, 저자들의 해박하면서 치밀한 분석, 현장감 넘치는 서술을 읽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관 심로프다. 그야말로 미드웨이호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근래에 이 책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번역 수준도 시중의 다른 번역서와 달리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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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있으면 재난영화의 대가 롤란도 에머리히의 초대작 미드웨이가 개봉합니다. 돈트리스 편대를 이끌며 아카키, 가가, 소류를 격파한 미드웨이 영웅 클라렌스 웨이드 매크라스키 주니어 중령 역은 카리스마 넘치는 중년 미남 배우 루크 에반스가 맡았다. 또 니미츠 제독은 영화 과인 밀크 미에서 관객 모두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는 신기의 최면술을 보여준 우디 해럴슨이 에드 스크래빈, 패트릭 윌슨 등 스크린에서 낯익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합니다. 예고편을 보면 진주만 기습에서 두리틀 폭격대, 그리고 미드웨이로 이어지는 것 같다. 오래 보기만 하는 전쟁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태평양전쟁은 우리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실제로 시중에서 태평양전쟁에 관한 책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의 한 파트로 하는 거야 이 미국 카울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벌이고 패전했다고 같이 간략하게 다루고 질뿐이었다 그만큼 흥미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하나조각에서 나온 <미드웨이>는 귀중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글의 항아리에서 나온 '하나봉제국 패망사'가 태평양전쟁 초기부터 끝까지 한 방에 관통되었다면, 하나봉의 '미드웨이'는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하나봉이 왜 전쟁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영화 보는 칠하기 전에 이 2권의 책을 이미 1권 읽으면 영화의 재미가 한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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